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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 어떤 저녁의 우울시(詩)/시(詩) 2019. 6. 7. 14:02
어떤 저녁은 아주 잘 차려 먹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마지막 잔고를 털어 미쳤다 싶을 만큼 밥상을 차리지만
근사한 밥상을 보면 밥맛이 뚝 떨어집니다. 밥값도 못하는 주제에.
그럼 어쩌겠습니까, 차려진 밥상이니 그동안 내 몸에 붙어살던 외로움이며,
증오의 독 같은 절망이며 죄 불러다 먹입니다.
아무 말 없이 술도 한 잔 나눕니다.
오늘쯤은 집나간 마음도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붙잡지 않을 테니 밥 한 끼 먹고 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한 상 차려 주고 문간에 나가 앉았습니다.
오늘은 불안조차 편합니다.
한밤중에 깨어 여전히 잠든 나를 보았습니다.
낯섭니다. 전 어찌하여 여기 잠들어 있는지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영혼의 불빛 같습니다.
발바닥이 까만 것을 보니 그 꿈이 그러한가봅니다.
거지같은 생, 내가 밥먹이고 싶습니다. 부디 내게 와서 쓰러지기를
(그림 : 최정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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