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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 병(甁) 속의 방시(詩)/시(詩) 2019. 6. 4. 18:00
숙취가 풀리지 않아도 새벽은 또 오고요
어머니는 반 덜어낸 소주병 속에 아버지를 구겨 넣네요
행여 목 마를까 물도 함께 넣어주네요
밀어 넣어도 밀어 넣어도 고래는 떠오르고요
그 고래 추울까 봐 이불 덮어 주듯이 얼른 뚜껑을 덮어요
술병 안에도 아버지, 술병 밖에도 아버지, 오늘도 많이 드세요
넘침과 졸아듦 사이, 병든 엄마 손에서 늘 타는 냄새가 나요
- 술 떨어지면 숨도 떨어지는 줄 아는 너거 아부지 죽어서도 구멍 난 술통 밑에 묻어 달란다
사방 통유리의 무덤 속에서 몇 명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안고 나올까요?
부엌 바닥을 파고 묻어둔 밀주 같았던 말들이 방을 뎁히는 불쏘시게였나요?
꺼내지 못한 붉은 눈의 아버지, 청소깝 같은 매캐함 껴입은 채 노송처럼 동 그랗게 잠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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