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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준 - 문득
    시(詩)/시(詩) 2019. 5. 17. 22:53

     

    모름지기 인생이란 이렇게 끌려갈 게 아니라

    저 혼자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를테면

    층층나무 그늘 속에서 곤줄박이의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듣거나

    맛있게 칼국수를 먹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내 삶의 주체가 아니라

    내 삶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그것이 비록

    격정뿐인 삼류 멜로영화를 보는 것만큼 유치하거나

    감동 없는 후일담의 주인공과 조우하는 것만큼 시시할지라도

    나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막막한 생의 끄트머리와 마주했을 때

    세월을 함께 건너오며 지켜본 그간의 삶에

    유음(遺音)을 대신할 단상 하나 간략히 적은 후

    내 이름자 아래에다 크게 수결(手決)을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이순에 이르러

    처음 맞이한 봄볕을 데리고 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이순(順) : 사람 나이 예순 살을 이르는 . 공자() 말을 기록한 논어 위정() 나오는 말이다.

    공자 60세가 되어서 천지만물() 이치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있게 되었다는 데서 말이다.

    (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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