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눈도 팔지 않고 다음을 생각하네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먹고 영화를 보자고 할까
붐비는 술집 말고 공원에서 저녁 산책을 하자고 할까
네게 가려
여느 때처럼 청바지에 운동화 회색 패딩점퍼를 입을까
내가 너보다 더 커 보일까 봐 신지 않았던
굽 높은 부츠에 레이스 스커트를 차려입을까
준비해 간 말은 반도 못했는데
호주머니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는데
너는 다음을 말하네
그 말 너무 환해
나는 더 가까이 다음을 생각하네
내가 먼저 다가가 전화를 기다렸다고 말할까
전화기를 꺼두었다고 너를 기다린 적 없었다고
매일매일 연습해온 시시한 표정을 지어볼까
너는 다음으로 있는데
아직 그렇게 있는데
너는 또 그러네
다음에 보자
너는 처음 말하는 것처럼 다음을 말하네
그 말 너무 생생해
나는 곰곰이 다음을 생각하네
먼눈팔다 들킨 사람처럼
네가 뒤돌아볼까 봐
내 시선에서 네가 사라질 때까지 그냥 있어보는 것처럼 환하게
(그림 : 김민정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경나 - 자청파 (0) 2019.05.03 홍경나 - 그 비린 것 한 토막 (0) 2019.05.03 홍경나 - 딴생각 (0) 2019.05.03 양애경 - 장사를 하며 (0) 2019.05.03 동길산 - 남향집 (0) 2019.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