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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명 - 낙동다방(洛東茶房)시(詩)/시(詩) 2019. 4. 5. 16:45
배달 간 레지는 삼 년째 돌아오지 않고,
한여름 오후 두시의 괘종시계는 나른하다
1947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산수화병풍 속,
따분하게 늙어가던 산과 강들이 서툰 붓질을 빠져나와
낡은 소파 사이를 기웃거리고 있다
건조한 어항에선 비늘이 얼마 남지 않은 금붕어들이
구석진 자리, 주름진 남녀의 심상치 않은 밀담이 만들어낸
저기압의 흐름을 힐끗거리고 있다
사팔뜨기의 응시,
한때의 열정 위태로운 사랑이 꺼졌기에
입구의 소화기는 편히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입술만 붉은 중년의 마담도 졸고
테이블 위에 놓인 볼살 쳐진 핸드백에선 분첩과 립스틱,
구겨진 버지니아 담뱃갑 처녀적의 꿈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식어버린 커피향은 습기와 함께 지층 아래로 가라앉고
퀴퀴한 럭키금성 24인치 브라운관에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잡음처럼
천정의 쥐 오줌처럼 번지고 있다
재방송,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천천히 오래된 액자 속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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