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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 나는 그를 모른다시(詩)/김광규 2019. 1. 6. 16:29
모른다고 대답하겠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모른다고 말하겠다
새벽에 일어나 오줌을 눌 때부터
한밤중 잠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때로는 자다가 깨어서도
언제나 생각해왔다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순두부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전화번호를 돌릴 때도
혼자 있거나
여럿이 어울리거나
잠시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누가 물으면
그를 모른다고 대답하겠다
가을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개미처럼 바장이는 자동차와 행인들
아무런 관계도 없이 서로
타인이 되어 헤아리는
겨울 밤하늘의 차가운 별자리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다음에도
변함없는 세상을 그려보면서
누가 물으면 태연하게
그를 모른다고 대답하겠다
아직도 오랫동안 생각나겠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고 말하겠다(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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