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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 산책은 길어지고시(詩)/나희덕 2018. 12. 10. 21:01
그의 왼손이 그녀의 오른손과 스치고
그녀의 그림자가 그의 그림자와 겹쳐질 때
그들은 서로에게
낯선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산책은 길어지고
둘 사이에 끼어든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란히 걷는 것은
아주 섬세한 행위랍니다
너무 앞서지도 너무 뒤서지도 않게
거리와 보폭을 조절해야 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모든 걸음은 어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절뚝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흰 실과 검은 실을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 오면
그때야 서로를 알아보게 될까
산책은 길어지고
흩어진 발자국들은 말을 아끼고
어둠은 남은 발자국들을 다 지우지는 못하고
(그림 : 안모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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