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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 벗어놓은 스타킹시(詩)/나희덕 2019. 8. 6. 13:40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그림 : 이영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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