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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사 온 등 푸른 고등어를 보면
나에게도 저렇게 등이 푸른 때가 있었을까
만 이랑 물결 속에서 대웅전 짓는 목수의 대팻밥처럼
벌떡벌떡 아가미를 일으키던 고등어
고등어가 가보지 않은 바다는 없었으리라
고등어가 가면 다른 고기들이 일제히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마중 나왔으리라
고등어가 뛸 때 바다가 펄떡펄떡 살아나서
물의 뺨을 철썩철썩 때렸으리라
푸른 물이랑이 때리지 않았으면
등이 저렇게 시퍼렇게 멍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그래, 바다의 치맛자락이 만 겹이었다고
아직도 입을 벌리고 소리 치는 고등어
고등어가 아니면 누가 바다를 끌고
이 누추한 식탁까지 와서
동해의 넓이로 울컥울컥 푸른 바다를
쏟아놓을 수 있을까
(그림 : 진종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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