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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고구마의 경전시(詩)/복효근 2018. 7. 1. 09:12
겨울을 넘긴 고구마는
툭툭 힘줄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새 봄의 기미를 알아채고는
제 몸에 혈관을 트는 것이다
물길을 트는 것이다
물그릇에 잠가두면
뿌리가 내리고 검푸른 줄기가 잎과 함께 돋는데
고구마 순이 자라는 만큼
그 혈관과 물길로
새싹에 줄기에 젖줄을 대는 것이다
넌출이 무성하게 뻗은 어느날
정작 고구마 덩이는 그 안이 텅 비게 된다
기꺼이 그것 때문에 몸 바칠 수 있다면
그 푸른 잎들을 고구마의 경전이라고 해야 옳다
껍질만 쭈글쭈글 내려앉은 그것을 이제
더 이상 고구마라 부르지 않는다
어느 새 앞 장의 경전이 뒷장에게
그 잎이 또 그 뒷장에게
그리하여 긴 탯줄을 이루어
고구마를
한 계절 너머의 어느 세상에 전해주었던 것이다(그림 : 신재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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