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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윤후 - 겨울 국밥
    시(詩)/시(詩) 2018. 1. 24. 08:54

     

    먼지가 눈처럼 쌓여있는 문 틈 앞에서
    처마에 꽁꽁 언 빗물이 낙하를 보았네
    목련꽃 흐드러진 붉은 그늘이
    간판을 사방으로 환하게 하는 국밥집,
    돼지 수육 삶는 냄새가 따뜻해
    소복이 쌓인 눈발은 서로 끌어안고 녹았네
    시장의 끄트머리부터 뽑혀 나갔어도
    수많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돌려먹었던 국밥집
    돼지수육보다 더 하얀 머리칼 동여매고
    케케묵은 김장독을 열어
    얼어붙은 묵은지를 썰던 할머니 안부가 궁금하네
    안방의 모서리를 트고 만든 식당 안엔
    뚝배기 박박 긁어가며 점심을 때우는 인부들과
    비닐이 벗겨진 의자에 앉아
    싱거운 이야기 풀어놓는 시장통
    가슴이 시장한 사람들이 숟가락을 들었네
    푸른 아크릴 간판이 벗겨져
    소금 같은 눈발을 이겨내는 동안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식당 문 굳게 닫히고
    빨간 딱지가 무서워
    스스로 눈 무덤을 파고 숨었던 사람들
    뽀드득 발자국 소리가 정겨웠던 시절
    돼지 수육 한 점에 난로보다 뜨거워지던
    해진 나무 식탁이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난 것도 오래였지
    먼발치서 얼룩 낀 창문 넘어론
    물구나무선 의자들만 돼지새끼처럼 부대끼고
    난로는 그동안 많이 울었던 것인지
    검은 눈곱들만 흩날리는 국밥집,
    눈길이 걷히고 나면 이젠 질퍽해질까
    허기진 구름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네.

    (그림 : 허영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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