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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조 - 무명 영령은 말한다
    시(詩)/김남조 2018. 6. 6. 11:00

     

    나는

    가고 싶던 곳 내쳐 못 가고

    예 와서 쓸쓸히 누웠느니라

    나는

    하고 싶던 말 못내 말하고

    기막힌 벙어리로

    누웠느니라

     

    포성이

    하늘을 뚫는 싸움터

    물밀 듯 밀고 밀어

    원수를 쫓던 나날

    내 나라와 내 겨레를 지켜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 하나

    솟구치는 불더미와

    다를 바 없어도

     

    칡넝쿨에 휘어 덮인

    산골 우물 모양

    속 깊이 맑고 맑게 개피던 생각

    오가는 총탄 속에서도 잊을 길 없어

    눈 아프게 삼삼히 보고 싶던 얼굴

    그 사랑도 나는 두고

    예 와서 검은 흙에

    묻혔느니라

     

    천지를 쪼개놓듯

    치열한 전투에

    빗발치듯 오가는 백 천의 포탄

    그 하나가 내 가슴을 쏘아 피 흘리던 날

    마구 내뿜는 선지피

    흥건히 풀에 물들고

    못 박히듯 내 생명

    그 곳에 멎을 때

     

    서럽디 섧게 감기는 눈자위는

    한 줄기 하얀 눈물

    흘렀느니라

     

    내가 죽은 후론

    이름 모를 전사

    이름을 모르매 새길 비문도 없이

    차라리 더 조촐한

    내 영혼의 모습

     

    하늘 푸르름을

    이리도 시원스레 덮고 누워서

    내 나라여

    내 겨레

    내 사람아 편안하라

    밤낮으로 빌고 빌며

    하세월 이렇게 누웠느니라

    (그림 : 권오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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