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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 해방촌, 나의 언덕길시(詩)/황인숙 2018. 5. 13. 19:41
이 길에선 모든 게 기울어져 있다
정일학원의 긴 담벼락도 그 옆에 세워진 차들도
전신주도 오토바이도 마을버스도
길가에 나앉은 툇돌들도 그 위의 신발짝들도
기울어져 있다
수거되기를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들도
그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도
가내공장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도
무엇보다도 길 자신이
가장 기울어져 있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갈 때면 몸이 앞으로 기울고
내려올 때면 뒤로 기운다.
이름도 없고 번호도 없는
애칭도 별명도 없는
서울역으로 가는 남영동으로 가는
이태원으로 가는 남산 순환도로로 가는
그외 어디로도 가고 어디에서든 오는
급, 경사길.(그림 : 박주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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