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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순 - 채석장에서
    시(詩)/시(詩) 2018. 1. 28. 10:50

     

    한낮의 찌든 노동 속에서도

    지난 밤 못다 이룬 꿈의 기억은 있다

    동대문 시장 생선 가게 앞의 즐비한 동태 눈알처럼

    허술하고 허기진 내 꿈을 위한 신앙은

    다만 힘을 사랑하는 길뿐이다

     

    때려 대는 배고픔이며

    찢어지는 아픔이며

    삶과 죽음은 이렇듯 초라하게 한데 엉켜

    여름날 아스팔트 열기처럼 타오르고

    없는 사람의 배고픈 신경을 타고 흐르는

    가진 사람의 욕망

    무디고 미련하지만 나의 창자에도

    서울의 뒷골목처럼 더럽고 가난하고 날카로운 신경이

    예수만큼이나 성스럽게 누워 있다

     

    꿈을 위해 꿈을 잊은 채

    핏발진 공복의 머리통들을 움켜쥐고

    산의 내장을 송두리째 도려 낼 때

    바늘보다 더 뾰족한 소리로 부서지는 우주의 비명

    그러나 나는 자랑스럽다

    아무 미움 없는 여기서

    그것은 차라리 자랑스러운 폭력이다

    (그림 : 박성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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