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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원 - 그 저녁의 강물시(詩)/시(詩) 2017. 12. 20. 09:55
내 유년의 강은 저문 물빛이 밤새 압록바위를 돌아
소리없이 흐르는 섬진강 상류다
아침이면 무지갯빛 햇살을 안고 넌출넌출 은어 떼가 튀어오르는
풀빛이 곱게 누운 강둑에서 검정고무신을 신고
해종일 강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언제라도 저 은어처럼 큰 세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늦은 동부꽃이 밭이랑 지던 날이었다
밤이 깊은 완행열차 안에서 차츰 압록의 강물이 멀어지고
새삼 가난한 저녁상에 오르던 재첩국이며
강가에 피던 달맞이 꽃이며 강 위를 날던 소리개의 붉은 눈빛이며
소꼽장난 하던 살구나무집 가시나의 동그런 얼굴이
물수제비 치듯 떠올랐다
수심 깊은 세상의 강물에 회오리처럼 떠밀려 다니면서도
한 번도 그날의 물빛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귀밑머리가 듬성듬성 쉰 갈대처럼 군락진 지금도천리 떨어진 북한강 기슭 해지는 선술집에 앉아
그날의 강물을 따라 마시고 있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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