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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 겨울 경문시(詩)/시(詩) 2017. 12. 17. 14:16
안개가 바다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안개의 부드러운 손에
수평선마저 풀어버린 자욱한 바다가
눈을 맞고 있었다
만나도 만나도 더 만나고 싶다고
흰 살점 풀어 바다로 뛰어드는 눈보라
좋아서 넘실거리던 파도는
갔다가 와야 할 곳이 있다고 해안으로 달려가고
해안가 찻집은 하얗게 눈 맞은 사람을 들고
창가로 다가 앉고 있었다 나는 설탕대신
눈송이를 커피에 타 마시며
밀려오는 파도와
쓸쓸한 벤치에 혼자 앉은 겨울을 바라보았다
눈은 때로 장애물 내밀어 길을 막기도 하지만
어떤 해후엔 설레임의 면사포를 씌워 축복하기도 한다
눈이 씌워주는 면사포 아래 푸른 소나무처럼 서있으면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말하지 않고도 순백의 마음을 약속할 수 있었다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어 경문까지 하이패스로 올라온 함박눈
영원히 머물면 안되냐고 물었을 때
바다는 대답했다 나에게는
떠나서 돌아오지 않아도 될 곳이 없었다고
돌아오지 않아도 될 곳으로 떠날 수도 없었다고
다만 왔다가 가야할 곳이 있을 뿐
돌아가서고 오고 싶어 눈물 나는 곳이 있을 뿐이라고
(그림 : 한임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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