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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효근 - 박새에게 세들다
    시(詩)/복효근 2017. 9. 16. 23:25

     

    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너머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 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 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겹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이불로

    내 안마당도 제 운동장으로

    모두 모두 소문내고 등기해놓은 것은 아닐까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침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금낭화 촉 돋는 한 때

    (그림 : 김기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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