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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 지명(地名)시(詩)/정윤천 2017. 8. 11. 21:41
스무살 무렵에 나는 해남이라는 지명을 퍽이나 동경했었다
거기, 바다가 시작되는 어느 산기슭에 땅 끝이 있다고 전해져 왔다
어쩌면 내 스무 살은, 시작과 끝이 한 뒷골목에서 함께 건들거렸던
누구라도 주워서 그을 수도 있던 깨진 병 같은 시절이었다
마흔 살 무렵이 가까워 오자, 나는 혼자서 여수에 가고 싶었다
내리막 길이 끝나 가는 허름한 점방집 유리문 같은 것에 대고
곧장 여수를 향해 가는 길을 묻고 싶었다
쑥부쟁이 닮은 주인집 여자가, 왔던 길 쪽을 향해 손사래를 치켜들고
한참이나 도라 도라 도라, 도리질을 쳐주어도
어쩌면 그 길을 되짚어 가지 않을지 몰랐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의 방식으로
그 지명들을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었을 파란만장의 내재율을
가만히 어루만져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림 : 김명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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