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희덕 -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시(詩)/나희덕 2017. 8. 6. 09:38
(낭송 : 박리나)
주춧돌을 어디에 놓을까
여기쯤에 집을 앉히는 게 좋겠군
지붕은 무엇으로 얹을까
벽은 아이보리색이 무난하겠지
저 회화나무가 잘 보이게
남쪽으로 커다란 창을 내야겠어
동백숲으로 이어진 뒤뜰에는 쪽문을 내야지
그 옆엔 자그마한 연못을 팔 거야
곡괭이를 어디 두었더라
돌담에는 마삭줄이나 능소화를 올려야지
앞마당에는 무슨 꽃을 심을까
대문에서 현관까지 자갈을 깔면 어떨까
저 은행나무 그늘에는
나무 의자를 하나 놓아야지
식탁은 둥글고 큼지막한 게 좋겠어
오늘도 집을 짓는다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 허공에
생각은 돌담을 넘어
집터 주위를 다람쥐처럼 드나든다
집을 이렇게 앉혀보고 저렇게 앉혀보고
벽돌을 수없이 쌓았다 허물며
마음으로는 백 번도 넘게 그 집에 살아보았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시(詩) > 나희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희덕 - 이따금 봄이 찾아와 (0) 2018.03.31 나희덕 - 낯선 편지 (0) 2017.10.29 나희덕 -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0) 2017.05.17 나희덕 - 두고 온 집 (0) 2016.12.14 나희덕 - 빗방울, 빗방울 (0) 201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