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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이슬을 잡으러 다녔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물병 하나 들고
풀잎에 매달려 있는 이슬이란 벌레를
이슬이란 벌레를 잡기는 쉬웠다
지나간 밤 꿈이 무서운지
어디 튀어 달아나지 못하고
곧장 땅으로 뛰어내리니까
그래도 포획은 조심스러웠다
잘못 건드려 죽으면
이슬은 돌처럼 딱딱해지니까
나는 한때 불과 흙과 공기의 조화로운 건축을 꿈꿨으나
흙은 무한증식의 자본이 되고
불은 폭력이 되고
나머지도 너무 멀리 있는 공기의 사원이 되었으니
돌이켜 보면 모두 헛된 꿈
이슬은 물의 보석, 한번 모아볼 만하지
기껏 잡아놓은 것이
겨우 종아리만 적실지라도
이른 아침 산책길 숲이 들려주던 말,
뛰지 말고 걸어라 너의 천국이 그 종아리에 있으니
(그림 : 김기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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