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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살다가 어쩌다시(詩)/황동규 2017. 6. 21. 11:15
천천히 말끝 흐리며 두팔로 어이없다는 몸짓까지 지어
꼿꼿이 앉아 같이 차 마시던 사람 고개 끄덕이게 한 날
말들이 정신없이 뻥 튀겨진 날
썰물이 조개 숨은 곳 게의 집 문턱까지 모두 다 드러내는
강화 개펄로 달려간다.
구름 떠 있고
물결은 저만치서 혼자 치고 있다.
하늘과 바다와 개펄이 손을 놓고 있는 곳
신발과 양말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다.
배 하나 천천히 다가오다 그냥 지나친다.
누군가 속에서 앓는 소리를 낸다.
앓는 소리는 아픔의 거품,
게처럼 거품을 뱉어내야 할까!
갈매기 수를 센다.
헷갈려 다시 센다.
바다가 몸을 한 번 뒤척인다.
아파하는 구름은 없다.
펄 한가운데 하릴없이 서 있는 사람이 수상한지
게 한 마리 가다 말고 긴 눈 세워 눈알들을 굴린다.
소라 껍질을 덮어쓴 그보다 작은 게는 바삐 지나간다.
저녁 햇빛 속속들이 스며드는 개펄
양손에 신발 든 이상한 형상 하나
정수리에서 발바닥 까지 철심 박혀 서 있다.
(그림 : 김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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