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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웅 - 어깨 너머라는 말은
    시(詩)/박지웅 2017. 6. 17. 09:58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 들이지 않고 문질러 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지도 않고 그저 끔벅끔벅 앉아 있다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모르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앞선 개울물 어깨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의 말 
    풀들이 바람 따라 서로 어깨너머 춤추듯 
    편하게 섬기다 때로 하품처럼 떠나면 그뿐인 말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이 
    어깨너머는 그저 다가가 천천히 익히는 말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 가는 말 
    다르지 않아도 마음결에 먼저 빚어지는 말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 아닌가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 마리 넘겨주듯 
    꽃이 꽃에게 제자리 내어주듯 
    등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않는 말 
    여기가 저기에게 뿌리내리는 말 
    이곳이 저곳에 내려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 내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그림 : 정종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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