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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오는 것이다
생시보다 더 생시 같은 헛것의 힘으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넘보아선 안 될 떨어져도 갔어야 할 그 길에
나는 한 묶음 붉은 발목을 버렸다
그 후 나는 어지러운 슬픔을 안고
수십 갈래의 길들을 떠돌았으니
돌아서 저녁 짓는 아낙같이
生은 나와 눈 맞추는 일이 드물었다
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오는 것이다
오래된 슬픔이 건장한 靑年으로 자라 듯
느리고 느린 속도로 녹두같이 선명한 생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숨을 멈추지만 나는 들킨다
그것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는 휘청거린다
발목 젖힌 채 걸어오은 저 서늘한 청년(靑年)의,
기필코 그 주인을 찾아오는 내 혈육의
뼈, 그 저린 곳을 더듬으며
나는 뼈저린 고백하는 것이다
버린 生이란 이렇게 눈감아도 보이고
그 그림자, 다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그림 : 박락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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