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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안동(安東) 저쪽시(詩)/김명인 2017. 6. 13. 10:56
중앙선 밤 기차를 타고 고향 가는 길
비좁은 통로가 입석으로 붐비는데
구석자리 의자에 기대 번역본 괴테를 읽고 섰던
감색 교복에 흰 칼라 차림의 여학생,
가슴에 매단 배지(校標)가 눈부시게 환했다우리도 그렇게 누군가의 등불로
캄캄한 어둠을 밝혔던 것은 아닐는지
그 밤, 기차가 스치고 지나던 칠흑 창밖에는
몇 송이 꽃불도 돋아났겠지만
기억이란 아득하다가도 그렇게 찰나로 피어나는
한 꽃송이 같은 것
영주 어딘가 열차가 서고 그 새벽 여학생은 내렸지만
가슴에 매단 꽃이 꼭 배꽃인 것 같아
마흔 해도 더 묵힌 갈피에서 꽃 이파리 펄럭인다
안동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할 한 나절이
아직도 어둠 저쪽에 남아 있는 것 같다(그림 : 임재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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