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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정희 - 몸이 큰 여자
    시(詩)/문정희 2017. 4. 30. 12:03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 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하며
    뜻없이 시들어가는 이 거리에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그림 : 김장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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