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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알뜰수선시(詩)/권선희 2017. 4. 7. 21:24
실비주점과 부식가게 마주보고
이발소와 화장품 가게 당겨 앉은 골목에
유리창 가득 햇살 꽂히는
알뜰수선 오래된 재봉틀이
색색의 실 꿰고 페달 밟아 가을을 굴리네요
십수 년이나 묵은 물땡땡이 원피스
닳고 닳은 작업복 무릎도
체크무늬 찢겨진 팔꿈치도
세상 돌다 헤지고 상처난 몸들
켜켜이 쌓인 사연을
하나씩 데려다 눕히고는
오래된 미련은 잘라냅니다
후회 위에는 야무진 다짐을 덧대구요
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돋보기 흘러내리는 오후를 정성껏 박음질 하네요
다르륵 박고 떠나는 재봉틀 소리
양철지붕으로 쏟아지는 여우비 같아요
텃밭 실파처럼 싱그럽게
우리들의 사주가 일어서고 있어요
(그림 : 정원조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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