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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 물웅덩이시(詩)/강연호 2017. 2. 10. 10:47
바닷가 모래밭에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참 골똘해서 멀찌감치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물웅덩이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제 가장자리 한쪽을 허물어뜨렸습니다
모래알들이 스르르 물웅덩이 속으로 꺼져들었습니다
땅이 꺼지는 한숨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또 한참 지나 물웅덩이는 제 다른 한쪽을
고요한 연기처럼 다시 허물어뜨렸습니다
물웅덩이는 그게 저 자신을 넓히는 줄 알지만
그래서 마침내 먼 바다 어디론가 흘러가고도 싶겠지만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모래알들에
제 골똘한 깊이가 메워지는 것도 아는 걸까요
그대 향한 마음이 나에게도
바닷가 모래밭의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습니다
나도 땅이 꺼지는 한숨으로
내 가장자리 한쪽을 허물어 그대를 넘보고 싶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대를 향한 마음이 스스로를 깎아
참으로 허무하게 허물어지면서
웅숭깊던 속내 역시 차츰 메워질 것도 압니다
어쩌면 그대를 향한 마음이란
이렇게 저를 허물어 또 저를 메우는 것일 겁니다
이렇게 고여 있는 마음으로만 그대에게 흘러가는 것일 겁니다
(그림 : 김정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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