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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 저문 길시(詩)/강연호 2016. 7. 26. 11:56
사람 기척에 놀라 그만 막다르게 입 다문 길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삼가 열며 걸었습니다
적소(謫所) 따로 없어 세상의 집들 웅크린 채 잠들고
불 꺼진 창에서 풀풀 새어나온 어둠이
길을 끌어가는 포플라 행렬 흔들어 어지럽혔습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생각은 숨가쁘게 달려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까지 데불고 오곤 하였습니다
혼자서는 작정한 만큼 가지 못할 산책이었을까요
귀찮아도 같이 걷자며 어깨를 치는 시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절은 힘겨웠으니
그리 알고 지내라고 이만 줄인다고
밑도 끝도 없는 엽서 한 장 우체통에 넣을 때
가슴 한 쪽이 먼저 둔탁한 소리로 떨어져내렸습니다
바라보면 저기 돌아가 지친 몸 뉘어야 할 거처가
자꾸만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습니다(그림 : 이세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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