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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나흘만 묵어가고 싶었다
더 이상은 곤란해 아름다움이 외로움으로 바뀌기 전에 뭍으로 나가야 해
그런 굴 딱지 달라붙은 다짐들을 먼저 바다로 띄어 보내며
까닭없이 아득해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느 이름 모를 몇 장의 바다를 걷어낸 뒤
또 다른 곳에서 한 사나흘 묵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안개에 곱게 머리 헹궈낸 바람결 따라
뿌우우 뱃고동 순한 물길 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떠돌수록 말없는 사내되어
제 그림자 스스로 밟을 무렵이면
애쓰지 않아도 잔잔하게 밀려
비로소 뭍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 : 채기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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