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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밥과 술시(詩)/최영철 2017. 1. 25. 10:47
허기져 허겁지겁 쑤셔넣는 밥 한 덩이
그리워 들이키는 술 한 자락
밥은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 같아서
곳간에 차곡차곡 쟁여두는 것
술은 빈속에 찔러주는 용채 같아서
이게 웬 횡재인가 벌컥벌컥 한달음에 탕진하는 것
밥은 불끈 솟는 힘이요 술은 흐드러지는 흥이니
밥은 종종걸음이요 술은 지그재그 팔자걸음이라
밥을 뛰쳐나와 멀리서 손사래쳐야 술
나 몰라라 한동안 내버려둬야 술
밥이 안 되면 박박 바가지나 긁힐 일이지만
술이 안 되면 무흥무취의 청맹과니
밥은 십 리를 가게 하지만
술은 붕붕 날아 백 리 천 리도 가게 하는 것
밥이 보고프면 배 하나 고달프지만
술이 보고프면 천심만신이 고달픈 것
술을 기다리면 술술 흘러 들어오지만
밥은 부지런히 내달려 거머쥐는 것
그게 무어라고 구박만 심해진 술
그래도 마냥 좋아 노래만 흥얼흥얼
똑같은 쌀로 출발했으나
천지간에 다른 길을 가게 된
밥은 기다리면 술이 되지만
술은 영영 밥이 될 수 없어라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어 끄적거린
술 그림자 시
(그림 : 이사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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