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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민복 - 라면을 먹는 아침
    시(詩)/함민복 2016. 10. 15. 20:14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그림 : 신대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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