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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봉지 쌀시(詩)/고영민 2016. 2. 23. 23:27
벚나무 밑에 꽃잎이 하얗게 쏟아져 있다
봉지 쌀을 사오던 아이가 나무 밑에 그만 쌀을 쏟은 것만 같다
아이가 주저앉아 글썽글썽 쌀을 줍는 것만 같다
집에는 하루 종일 누워만 지내는 병든 엄마가 있을 것만 같다
어린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속이 썩을대로 썩은 늘 우는 엄마가 있을 것만 같다
배고파도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는 착한 동생들이 있을 것만 같다
날 저무는 문밖을 내다보며 그저
왜 안 오지? 왜 안 오지?
중얼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벚나무야, 내게 쌀 한 봉지만 다오
힘껏 나무를 발로 차본다
쌀을 줍고 있는 아이의 작은 머리통 위로
먹어도 먹어도 배부를 리 없는 흰 꽃들이
하르르, 쏟아진다
(그림 : 류은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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