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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탱자나무 생울타리 지날 때시(詩)/복효근 2015. 12. 31. 12:33
탱자나무 생울타리 그것은
아주 안 보여주지는 않고
다 보여주지도 않아서
그 가시나 낮달 같은 얼굴이 보일락 말락
탱자 잎사귀들이 그렇게 원망스럽던 것을
세수 소리보다 작게는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차박차박 물 붓는 소리
초승달이었던가 잠깐씩 구름을 벗어난 사이
푸르스름하게 비쳐오던 것은
막 맺혀드는 탱자알이었을까
막 부풀어오는 젖가슴이었을까
겨울은 차박차박 물 붓는 소리도 없이
탱자울 가지에 분분한 새소리뿐
나이만 먹고 밤은 길었다
기다림이 찌그러든 탱자알 같은 봄날
접어 날린 쪽지편지가
탱자 가시 사이에 찢어져서
낱낱이 찢어져서 하얗게 탱자꽃이 피고
나만 보면 앵돌아진 탱자꽃 아프게 피고
탱자나무 생울타리,
그것은 아주 안 보여주지도 않고
다 보여주지도 않아서
아직도 뉘 집 생울타리 가를 지나면
그 뒤에 숨어 뒷물하는 그 가시나가
하냥 그립다(그림 : 임현진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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