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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장작 패는 법시(詩)/복효근 2014. 9. 21. 12:59
이제 때가 되어
베어진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에겐 추억이 있다네
잘린 나무토막을 보면 나이테가 보이지
그 나이테가 나무의 온 몸에 결을 만들고 있지
그 결을 따라 바람이 드나들고
물이, 말하자면 나무의 피가 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장작을 팰 땐 포정이 소를 다루듯 해야 하네
무리한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나무가 이룬 결을 따라 도끼날을 집어넣어주면 돼
마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었던 그 모습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천장사가 육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에게 먹이는 조장처럼 말이야
포정의 소는 뼈와 살이 다 분리되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제 몸에 칼이 들어와 후비고 다녔다는 걸 몰랐다잖나
무엇보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가 물이었던 시절
나무가 바람이었던 시절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가 미리 내놓은 길을 찾아
그 길을 넓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나무가 쩍 박수소리를 내며 벌어진다네
주의할 점도 있지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그림 : 홍경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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