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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 굵직굵직한 골목들시(詩)/문인수 2015. 12. 17. 21:36
마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작고 초라한 집들이 거친 파도 소리에도 와르르 쏟아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꼬부라지는 골목들의 질긴 팔심 덕분인 것 같다.
폭 일미터도 안되게 동네 속으로 파고드는 막장 같은 모퉁이도 많은데,
하긴 저렇듯 뭐든 결국 앞이 트일 때까지 시퍼렇게 감고 올라 가는 것이 넝쿨 아니냐.
그러니까, 굵직굵직한 동아줄의 기나긴 골목들이 가파른 비탈을 비탈에다 꽉꽉 붙들어매고 있는 것이다.
잘 붙들어맺는지 또 자주 흔들어보곤 하는 것이다.
오늘도 여기 헌 시멘트 담벼락에 양쪽 어깻죽지를 벅벅 긁히는 고된 작업,
해풍의 저 근육질은 오랜 가난이 절이고 절인 마음인데,
가난도 일말 제맛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 것이다.
한 노파가 지금 당신 집 쪽문 앞에다, 골목 바닥에다 몇포기 김장 배추를 포개놓고 다듬는 중이다.
한쪽에다 거친 겉잎을 몰아두었는데 행여 그 시래기라도 밟을까봐
한 주민의 뒤태가 조심스레 허릴 굽히며, 꾸벅꾸벅 알은체하며 지나간다.
또 바람 불고, 골목들은 여전히 튼튼하다.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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