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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학 - 소풍
    시(詩)/안상학 2015. 11. 6. 21:15

     

    내사 두어 평 땅을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간다

    새들이 나무를 꼬깃꼬깃 접어 물고 따라나선다

    벗은 이 정도면 됐지

    술병을 닮은 위장 속에는 반나마 술이 찰랑이고

    파이프를 닮은 허파에는 잎담배가 쟁여져 있으니

    무슨 수로 달빛을 밟고 가는 이 길을 마다할 것인가

    무슨 수로 햇빛을 밟고 가는 이 길을 저어할 것인가

    해와 달이 서로의 빛으로 눈이 먼 이 길을 뒤뚱이며 간다

    어느 날은 달의 뒤편에 자리를 펴고 앉아 지구 같은 것이나 생각하며

    어느 날은 태양의 뒤편에 전을 펴고 누워

    딸내미와 나같이나 불쌍한 어느 여인을 생각하며

    조금씩 술을 비우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담배를 당긴다

    그때마다 새들은 나무를 펴고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모래주머니에 챙겨 온 콩 두어 개를 꺼내 먹는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고 잊을 만하면 걸어간다

     

    이상하리만치 사랑하는 것들과 가까이 살 수 없는 이번 생에서

    나는 가끔 꿈에서나 이런 소풍을 다녀오곤 하는데

    오늘도 그랬으니 한동안은 쓸쓸하지나 않은 듯

    툴툴 털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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