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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건진국수시(詩)/안도현 2014. 6. 16. 18:32
건진국수에는 건진국수,라는 삼베 올 같은 안동 말이 있고
안동 말을 하는 시어머니가 여름날 안마루에서 밀가루반죽을 치대며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있고
반죽을 누르는 홍두깨와 뻣센 손목이 있고
옆에서 콩가루를 싸락눈처럼 술술 뿌리는 시누이의 손가락이 있고
칼국수를 써는 도마질 소리가 있고
멸치국물을 우리는 칠십년대 녹슨 석유곤로가 있고
애호박을 자작하게 볶는 양은냄비가 있고
며느리가 우물가에서 펌프질하는 소리가 있고
뜨거운 국물을 식히는 동안 삽짝을 힐끔 거리는 살뜰한 기다림이 있고
도통 소식없는 서방이 있고
때가 되어 사발에 담기는 서늘한 눈발 같은 국수가 있고
찰방거리는 국물이 있고
건진국수 옆에 첩처럼 따라붙는 조밥이 있고
열무며 풋고추며 당파를 담은 채반이 있고
건진국수에는 누대의 숨막히는 여름을 건진국수가 안동 사람들을 건졌다는 설이 있다.
안동건진국수 :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아주 가늘게 채 썬 칼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구어서 육수로 말아내는 일종의 잔치국수이며
면발이 가늘수록 품위를 더하는 반가요리이다.
(그림 : 허영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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