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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경 - 달전을 부치다시(詩)/시(詩) 2015. 7. 3. 08:45
달전을 부칩니다
신혼 때부터 즐겨 먹던 것입니다
애호박을 썰어 부친 것을 달전이라 합니다
달처럼 둥글다고 해서이지요
비탈진 언덕 호박꽃 같은 신혼집에서
벌처럼 붕붕대며
늦은 저녁과 함께 부쳐 먹곤 했습니다
남편은 달전을 먹으며
호박처럼 둥글둥글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보름달처럼 환하게 살자고도 했습니다
달덩이 같다는 말은 때대로
뚱뚱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내 얼굴이 보름달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둡고 험한 삶의 언덕 더듬더듬 넘을 때마다
달전 부쳐놓고 남편을 기다립니다
하늘이 달을 띄워 밤길 열어주듯
밥상가득 달을 띄웁니다
사시사철 애호박이 있어 든든합니다
여름 한철 나던 것보다 맛은 덜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전을 부칠 수 있으니까요
사는 일이 호박덩굴처럼 엉켜버린 오늘은
그믐입니다
시장에서 가장 잘 생긴 애호박을 골라
이 어둠 밝힐 달전을 부칩니다(그림 : 이영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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