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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한구석에 처박힌
쪼글쪼글한 감자 한 알을 위해
저 늙은 냉장고는 그렇게
남몰래 밤낮없이 골골거렸나
사방 얼음벽에 갇혀
혹독하게 제 육신 줄여가며
웅크려 한 게절을 온전히 견디고 숨겨온
한 점 감자의 씨눈에서
기어코 시퍼런 목숨 한 줄기
피워내고야 마는
군데군데 붉은 녹 꺼실하게 핀
냉장고는 쉽사리 잠들지도 않네
제 몸 속 화안하게 밝혀
감자, 양파, 당근, 고구마
자식인 듯 손주인 듯 끌어안고 있는지
가르르 그르르 가쁜 숨소리
온 밤 내 잠 속으로 쏟아붓네
흰 감자꽃, 양파꽃
푸른 무청 지천인 들판 하나 일어서네
보랏빛 고구마 순 창문을 열고
세상 속 울울창창 뻗어가는 사이
그 사이
그저 무심하고 낮게
하하하
어머니 웃음소리 다녀가시네
(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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