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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징검돌 위에서시(詩)/심재휘 2015. 5. 9. 22:21
맑은 날인데
개울물이 뜻밖에 빠르고
징검돌들은 얼굴을 가린 채 젖어 있다
상류 쪽 먼 산기슭에서는 언젠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왔겠다
종내에는 비도 그치고 세월은 흘렀겠다
한데 어찌하여 그날의 빗소리는 이곳까지 흘러왔나
눈 감은 징검돌들 사이에서 왜 소리 죽여 울고 있나
지나간 어느 먼 날에
처음 발 앞에 돌을 놓으며
개울을 건너가려던 한 사람 있었겠다
마음을 점점이 떨어트리고
기어이 개울을 건너간 사람 있었겠다
서로 손을 잡을 수도 없고 거둘 수도 없는
징검돌 사이의 쓸쓸한 간격을 따라갈 때
어느덧 익숙한 보폭 아래로
사무치도록 투명한 물이 흘러갈 때
지울 수 없는 물의 무늬들만 흘러가지 못할 때
이런 날은 내 가슴속에도
물을 건너가던 사람 하나
자꾸 그리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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