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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휘 - 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다
    시(詩)/심재휘 2014. 12. 6. 00:22

     

     

     감 하나가 가지를 떠나

     제가 만든 그늘 속으로 떨어졌다

     대책 없이 드러나는 건 매양 속살인 듯

     붉게 무른 곳에서

     질척거리는 거리로 흘러나온 마음이

     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는다

     

     이별의 어떤 연유가 흥건히 묻은 땅바닥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감이 그으며 내려온 선을 거슬러 오른다

     그가 둥둥 떠 있던 허공의 어떤 행복까지

     뒷걸음질쳐보고 싶은 저물녘에

     나는 닿아 있는 것이다

     

     뒷걸음으로 골목을 돌아나가서

     까마득히 먼 길 끝

     비오는 그해 가을로 뒷걸음질 하면

     아직도 그 사람은 거기 있을 것도 같고

     우산을 접고 들어가 창가 그 자리에 벌떡 앉으면

     감았던 눈을 뜨고 흩어지던 날숨들을 거두어들이면

     잃었던 사랑을 다시 찾을 것 같은데

     끝내는 떨어져 가랑비 맞는 감

     

     떨어지고 나서도 마저 익어가는 감 하나가

     오늘은 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아서

     가슴 속 녹슨 태엽을 감듯 뒷걸음을 걸어보는데

     뒤뚱거리며 앞으로만 가는 저녁을

     이 몸은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림 : 김상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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