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늘이 짙다
8월 해변에 파라솔을 펴면
정오의 그늘만큼 깊은 우물 하나
속없이 내게로 와 나는
그 마음에 곁방살이하듯
바닷가의 검은빛 안에 든다
한나절 높게 울렁거리던 파도가
슬픈 노래의 후렴처럼 잦아드는 때
더운 볕도 기울고 그늘막도 기울어
조금씩 길어지던 그늘은
어느덧 바닷물에 가 닿는다
물빛을 닮은 그늘은 넉넉하다
우물 안의 맑은 샘물처럼
그늘은 이제 바다에서 흘러나온다
바다 속의 넓은 고독으로부터
슬며시 빠져나온 손 하나가
내 발을 덮고 가슴을 덮는다 곧 있으면
제 빛의 영토로 돌아갈 찬 손 하나가
그러나 그늘은 큰 그늘 속으로 돌아갈 뿐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으나
다만 내가 못 볼 뿐이니
밝았다 저무는 것은 내 안의 빛이었으니
넓고 넓은 바닷가에
내가 덮고 있는 그늘 하나
해질녘의 그늘 같은, 늘 그리운 사람(그림 : 차일만 화백)
'시(詩) > 심재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재휘 - 조금 늦은 것들 (0) 2015.02.07 심재휘 - 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다 (0) 2014.12.06 심재휘 - 우산을 쓰다 (0) 2014.09.27 심재휘 - 허물어진 집 (0) 2014.09.27 심재휘 - 썰물 (0) 201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