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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멀어진다
처음에는 둥근 자갈들을 내보이더니
어느덧 모래바닥을 보이고
어두운 개흙까지 드러내고서야 멈춰선다
일렁거리며 한참을 더 생각하다가 그 물
천천히 돌아선다
사람들은 한때 가장 깊은 곳이었던
모래흙 위를 맨발로 걸어 멀리 갔다가
채 식지 않은 발자국을 따라
돌아나온다 해풍의 방향이 바뀌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묽은
바람이 묻어 있다
그때에도 바닷물은 꼼짝 않고
개흙과 모래바닥과 자갈들을
그곳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무늬들을
쳐다보기만 한다 어떤 후회들처럼
물빛이 짙어진다
어제보다 하루 더 힘을 쓴 낮달이
생각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나갈 때와는 다른 한 덩어리 물이
이제 들어오려고 한껏 웅크린 몸을
조여 놓은 울음들을 천천히 풀고 있다(그림 : 문인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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