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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미 - 저녁의 환(幻)시(詩)/손순미 2015. 4. 30. 21:49
문을 두드리는 그림자 한 뭉치 어둠을 전해주고
우체부처럼 사라진다
봉투 속에서 두툼한 어둠이 흘러나온다
바람에 부풀려진 어둠이 야경을 돌며 차례로 불빛을 호명하고
일제히 검은 모자를 쓴 상점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대답처럼 네온을 켠다
무명의 상표들이 물끄러미 사람을 쳐다본다
유리알처럼 맑은 계집애들의 웃음소리가 윈도우를 흔들고 지나간다
늦은 저녁이 뒤따라간다
호주머니 속에서 남아 있는 길을 꺼내본다
꾸깃한 길이 비로소 허리를 편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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