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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 다시 봄비는 내리고시(詩)/시(詩) 2015. 4. 25. 09:27
봄비라는 말 속에서 너를 만났다.
지친 뒤척임만 가득한 눈을 보며 그 속으로 살러 가고 싶었다.
낭떠러지 같은 말 봄비 속에서 너와 사랑을 했다.
비명도 없이 절벽을 뛰어내리던 꿈.
너와 살고 싶은 저녁이 봄비라는 말 속에 있다.
천국이 있다면 봄비라는 말 속에서부터 시작될 거라고
나무들이 키를 키우며 책처럼 펼쳐지던 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거짓말처럼 또 다른 생이 시작되었고,
단절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절벽은 나를 뛰어내리게 하였다고 나는 기록한다.
나의 절망은 비루하였고,
꽃이 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네가 떠나간 흔적처럼 남았다.
봄비를 맞으며 골목을 지나가는 연인들.
저들은 서로를 버티느라 또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내가 없이 봄비가 내리는 저녁.
(그림 : 왕영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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