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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 벚꽃이 진 날에시(詩)/시(詩) 2015. 4. 23. 20:29
벚꽃이 지니 비로소
그 나무 아래를 지날 용기가 납니다.
하마 벚꽃 핀 날이 길었더라면
나는 내내
당신을 향한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눈부심이야 당신만으로도 족한데
꽃 멀미도 멀미려니와
벚꽃을 배경으로 한 세상은 퍽이나 황홀해서
종내 앞을 볼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얼른
얼른, 당신을 보고서는
꽃그늘이 한창인 동안에는 마음만 졸이다가
아, 그 그늘에서 웃는 사람들만 부러워하다가
마침내 벚꽃이 졌으니
용기를 내어 당신을 찾습니다.
그러나 꽃이 지기는 졌다지만
땅바닥으로 꽃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의 선이
어지간히도 고운 게 아니어서
왜 이 길을 넘어서야만 만날 수 있는 건지
당신을 탓하게 됩니다.
(그림 : 장태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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