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세실리아 - 곰국 끓이던 날시(詩)/손세실리아 2015. 4. 21. 13:32
노모의 칠순잔치 부조 고맙다며
후배가 사골 세트를 사왔다
도막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
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
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
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그림 : 김경렬화백)
'시(詩) > 손세실리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세실리아 - 바닷가 늙은 집 (0) 2015.04.21 손세실리아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 (0) 2015.04.21 손세실리아 - 욕타임 (0) 2015.04.21 손세실리아 - 그리움에게 (0) 2015.04.20 손세실리아 - 섬 (0) 201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