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시하 - 엄마가 말이에요
    시(詩)/시(詩) 2015. 4. 20. 14:23

     

    칡꽃 피는 산골짝에
    알 굵은 산딸기 옹골차게 열리면요
    덩굴을 비집고 손톱 끝에 단물 들이며 따내서는
    칡 잎에 가만가만
    포대기에 아기 감싸듯 싸오곤 하셨는데요
    구멍 숭숭 뚫린 하얀 런닝구를 그냥저냥 입으시다
    어느 날엔가 남사스러 더는 못 입겠다며
    빡빡 치대 빨아선 행주랑 걸레를 만드셨는데요
    솥뚜껑 위 꼭 짜놓은 하얀 행주는 애벌레 같았는데요
    꽁치 깡통 분유 깡통 주워다 주며
    배추벌레나 잡으며 놀라고 하시는데요
    배춧잎에 숭숭 길 터놓은 얄미운 고놈들을
    고무신짝으로 꾹꾹 눌러 터뜨리면요
    훔쳐 먹은 푸른 수액이 찌익 흘러나오곤 했는데요
    엄마를 숭숭 뚫어 물고를 트고요
    수액을 쪼옵쫍 빨아먹고 자란 우린 애벌레인데요
    꿈 속의 무서운 거인이 우리를 짓밟으려고
    장화 신은 커다란 발로 왁왁 다가오면요
    어찌 알고 깨우는지 참 용하기도 하신데요

    느그들 어여 몬 인나나, 해가 중천이다!
    물방울 무늬 런닝구 환하게 입으신 엄마가요
    어둑새벽, 고추밭 다녀오다 딴 산딸기를 쑥 들이미는데요
    칡잎 속에 피어난 붉은 꽃들이 새콤 달콤도 한데요
    봉숭아 꽃물 한 번 들일 짬 없던 엄마의 손가락마다
    우와, 칡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던걸요.

    (그림 : 김주형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연향 - 봄은 꽃들의 구치소이다  (0) 2015.04.21
    노연화 - 봄나물  (0) 2015.04.20
    이시하 - 꽃, 떨며 피다  (0) 2015.04.20
    이시하 - 그랬으면 좋겠네  (0) 2015.04.20
    이시하 - 행복 한평  (0) 2015.04.2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