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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 - 꽃같은 거 보지 마시(詩)/시(詩) 2015. 4. 20. 14:00
언덕을 오르는데 말이지 겨드랑이가 환해지는 거야.
밥사발 수북수북 고봉으로 차려놓은
조팝나무 꽃이 보이잖아.
밤새 군불 지핀 것이 봄이겠거니,
정분 난 봄, 고것이 사알살
조팝나무 손가락 발가락 간질이고 간질이고 하다가
화라락, 하얀 꽃불을 터트리고 만 거려니
고것처럼 환해지고 싶다가
환해진다고 믿어 보다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음 싶어지는 거야.
오늘 그랬거든, 내가
돈 좀 빌려 줄래, 돈 좀 빌려 줄래,
심부름 가는 어린애처럼 자꾸 되내였는데
그 말이 참 안 나오는 거야
커피만 갖다주더군
원두야 이거, 향 좋지?
속 쓰리다 얘……
비싼 애완견의 소프라노 소리
짖지 마, 간식 줄게 육포 찢는 소리
핏자헛에 시켜, 이름 없는 집 건 맛없어 소리
저녁 하기 싫은데 잘 됐네 소리
자기 퇴근하면 회전 초밥집 가자 소리
반짝이는 소리들 뒤에
돈 좀 빌려 달란 소리, 배고프단 소리 안 나오지 뭐야
봄은 봄이네 날씨 기똥차게 좋다, 그치?
반짝일 듯싶은 소리 하나에 웃음도 덤으로 떨궈 놓고.
언덕을 오르는데 말이지 겨드랑이가 환해지는 거야
밥사발들이 벌떡벌떡 걸음마다 쫓아오잖아
밥물 냄새 화악 풍기는 고것들이
밤새 짓까불며 간질간질 웃다 터져버린 고것들이
거짓부렁 하잖아, 밥인 양, 밥인 양……
꽃이 밥으로 보일 때는 꽃 같은 거 보지 마.
(그림 : 이섭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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