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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바다의 길목에서시(詩)/오규원 2015. 4. 15. 12:41
나는 바다의 길목에 서 있었고
수평선은 내 심장의 높이에 걸쳐졌다
바다의 높이가 가슴까지 올라와 수평선이
내 심장에 걸쳐져도 나는 담담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 밖에 서 있었으므로
바다는 나를 잠글 수 없었고
할 일 없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비운
내 곁 빈집의 대문을 잠그고 있었다
내가 바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바다는
주검이나 주검의 위치에서 나와 마주서 있었고
마주보고 서 있어도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내 옆사람 속으로 들어가 서서
사람을 통해 구부러지는 길과 무덤을 보고
내 머리 위에 탕아처럼 누운 정신나간 하늘을 보았다
바다는 내 앞에서 내 아픈 곳을 들여다보며
수평선을 만장(輓章)의 높이까지 들었다 놓았지만
나는 나를 비워두었으므로 바다 앞에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마치 탕아처럼 내가 기웃거린
빈집은 어느 곳이나 대문이 열려 있어 열쇠가 있어도
잠긴 곳이 없어 내가 열 수 없었듯이輓章 (만장) :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을 비단(緋緞) 천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행상(行喪)할 때에 상여(喪輿) 뒤에 들고 따름
(그림 : 최정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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